시간을 파는 남자 시공간을 살다

Fernando Trias de Bes, 권상미 옮김, 21세기북스,2006

 

인생의 목표인 붉은 머리 개미에 대한 연구를 위해 시간이 필요한 TS(아무개). 자신이 빚지고 있는 35년의 시간을 갚기위해 시간을 담아파는 상품 T를 판매해 성공을 거두나, '어떤나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이르고 만다. 결국 국가는 TS에게 국가반역혐의로 사형을 언도하고, 체제를 다시 원상복귀할 대안을 사면의 댓가로 요구한다. 그 대안은 화폐의 단위를 $에서 T로 바꾸는 것.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효율적인 체제로 드러났으나, 새로운 기준점은 아니며, 잃어버린 유토피아를 대신할 새로운 유토피아가 황급히 마련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통찰은 부족한 듯하나, T는$이지만 그 소유자가 거꾸로 되어있음에 대한 풍자는 충분하다.


우리 시대의 아나키즘, 숀 쉬한(sean M. sheehan) 시공간을 살다

조준상 옮김, 필맥,2003.

1968년 5월 '소르본 점거위원회'가 소련공산당에 보낸 전통문 중

두려움에 떨라, 관료들아. 노동자 평의회들의 국제적인 힘이 곧 너희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마지막 자본가의 내장으로 마지막 관료들의 목을 매달고 나서야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투쟁이여, 트로츠키와 레닌에 맞선 마흐노주의자들의 투쟁이여, 영원하라. 1956년 부다페스트 의거여, 영원하라. 국가를 타도하라.


1970년대 영국 분노여단 Angry Brigade

성명 7호 중
장애물을 보라...숨쉬지 말라...사랑하지 말라...파업하지 말라...말썽 일으키지 말라...하지 말라. 정치인들. 지도자들. 부자들. 대기업 사장들이 지휘하고 있다. 그들은 지배하고 우리 인민들은 고통 받는다...그들은 우리를 생산과정의 단순한 기능들로 만들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은 공장에서 나오는 화학폐기물로 세계를 오염시켜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디어로 배출한 쓰레기를 우리의 목구멍에 넣었다. 그들은 우리를 어리석은 성적 희화화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우리 모두를, 남성과 여성 모두를...우리를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특정 종류의 전문가들이 있다....의원들, 공산당, 노동조합 지도자들, 사회사업가들, 구식좌파들...이 모든 사람들이 감히 우리를 대변해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사람들에 공통된 점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를 팔아먹는다는 것이다.

"삶은 너무 따분하다. 우리가 받은 임금을 몽땅 최신 스커트나 셔츠를 사는 데 소비하는 것을 빼고는 아무런 할 일이 없다. 형제자매여, 당신의 진정한 욕망은 무엇인가?"

1968년 파리의 그래피티

현실주의적이 되어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금지하는 것은 금지된다.
욕망을 현실로 간주하라.
상품은 민중의 아편이다.
더 맣이 소비할수록 삶은 더 짧아진다.
예술은 죽었다. 그 시체를 소비하지 말라.
절대 일하지 말라.
달려라 동지들이여, 옛 세계는 등 뒤에 있다.
도로포장 벽돌 밑에 해변이 있다.

일상생활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그리고 사랑이 지닌 파괴적인 성격과 제약조건들을 거부하는 행위가 가지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점들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혁명과 계급투쟁을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입에 시체를 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2006, 가을 들이 운다 시공간을 살다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

크라잉 넛의 꽉찬 여섯 곡, 오지총의 반딧불이, 도종환시인의 폐허 그 후(제국의 종말) 이어진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 대추리 주민들에게 보내는 고향의 서정 <저 들에 불을 놓아>와,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92년 장마, 종로에서>.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냐.
우리들의 한시 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대한민국은 대추리를 버리고, 정태춘은 대한민국을 버렸다.

정태춘의 노래와 함께 사람들은 보신각 울타리를 넘었다.
앰프에서 깊은 종소리를 울려대고, 대추리 만세를 외쳤다.

큰 박수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는 바둘기는 보이지 않았다.
들판의 불기둥도, 첫 차도, 대한민국도.

다만, 추운 날씨를 오기로 버티는 사람들과
오기로 버티는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은 눈으로도 넘나든다.

공권력에 맞짱뜨는 사람. 이윤엽.<출처-http://www.antigizi.or.kr>
이글루스 가든 - 모든 책을 다 읽었다!

하늘공원


선유도 시공간을 살다


정지용 전집1, 민음사, 鄕愁 시공간을 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낳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朝鮮之光>> 64호, 1927. 3


경성 트로이카 시공간을 살다

내가 서있는 20세기 초반의 공간.

김포가 아니라 영등포 어디에선가 비행기가 뜨고 내리던 시절의 이야기. 숨겨지고 감춰왔던 그 이야기들은 드러내지는 순간 소설처럼 다가온다. 현실과 소설의 시공간이 뒤죽박죽되어버린 21세기에 20세기의 시작이란 어떤것인가?

문학이 죽어버린 시대에 쓰여지는 소설...

소설같지만 숨결이 들어있는 이야기가 한 세기를 꼬박 넘긴 아흔살 여인의 꼬장꼬장한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듯 하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존재감. 소설을 읽는 이유다.

 

소설을 그냥 소설가가 쓴 글이라고 하면 또 어울릴만한 소설. 김곰치. <발바닥 내 발바닥>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시공간을 살다

영화로 만들어졌다길래, 덥썩 읽어봤다. 공지영 소설은 도서관에선 좀체로 빌리기 어렵다.
그 정도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소린데, 소설의 내용은 현실에도 뒤처져있다는 느낌.
우리들의 사형수 주인공께서는 살인죄를 덮어 쓰고도 모두를 용서하고 교수대로 올라가는 살리고 싶은 인물.
그 안타까움으로 사형제를 폐지하기엔 현실은 저만치 있다. 십수명을 살해하고도 득의양양한 사형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 우리들의 행복한 '전두환'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시공간을 살다

그가 그리스도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모호한 시대.
그가 마침내 완성한 것은 이내 부질없는 것이 되었다.
그의 신이 세상에 토악질되었을 때, 그것은 뒤샹의 변기.

세상 모든 혁명 시공간을 살다

입장A 세상의 끝을 볼 때가 왔다. 혁명은 원자폭탄 뒤에 온다.
입장B 인과법칙의 끝은 시간 만이 안다. 혁명은 기다리는 자의 것이다.
입장C 혁명은 마침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원폭과 함께 입장A가 사라지는 것이라면 입장A에 동의한다.
 

민주주의의 민주화 - 최장집 시공간을 살다

.대안이 주변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기존 집권당의 지도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점과 아울러 개혁에 대한 커다란 자율성을 확보한 정부가 탄생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내용을 이루는 대표성과 책임성의 연계를 모호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도 갖지않고 시장경쟁에서 약자의 위치에 선 보통사람들이 수의 힘과 정치의 방법을 통해 그들의 권익을 실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체제이다...로크의 개념을 따르면 그것은 정부와 피차간의 신뢰이며 최근 민주주의 이론으로는 책임성이라고 하겠다...따라서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가치 그리고 그에 다른 정책을 솔선해서 수용하고 추구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따지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다.

 

.구체제가 안고있는 두가지 문제를 비판했다. 하나는 냉전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권위주의체제이며,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 산업화에 의한 노동억압과 불평등이었다. 그것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혁명적 레토릭으로 전자는 'NL'로 후자는 'PD'로 표현되었다...그러나 다른 한 이슈인 PD적 문제의식은 그동안 민주주의 틀 속에서 전혀 정리,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보르헤스 시공간을 살다

어느 사람이 세상을 그리는 작업에 나섰다. 오랫동안 그는 한 공간을 시골들, 왕국들, 산들, 해안들, 배들, 섬들, 물고기들, 방들, 기계들, 행성들, 말들 그리고 사람들로 채워갔다. 죽기 얼마 전, 그는 그 끈질긴 선의 미로들이 자기 얼굴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리움, 삼성미술관 시공간을 살다


20세기 서양 철학의 흐름 01

20세기 서양 철학의 흐름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조현진·유서연 옮김, EjB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19세기 말까지……우리 인간의 언어는 진실한 것이였으며, 우리 인간의 정신은 세계와 완전히 일치……188년부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기호들은 실제로 우리의 마음 바깥에 어떤 기반을 가지고 있는가? ……하지만 이들 중 다수가 우리의 언어가 참을 말한다는 주장을 허구라며 거부했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기호들 자체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러자 투명성을 상실한 기호들은 더욱 신비한 것이 되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표상의 논리가 정신의 구성물에 불과하고 더는 자연적이며불변하는 구조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유형들의 구성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흘레브니코프가 전대미문의 초심리언어인 자움 Zaum을 고안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가장 눈부시게 변화를 겪은 것은 무엇보다도 회화언어……말레비치<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1915)비구상회화라 해도, 표상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가시적인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영혼에 의지했다. 이런 선도적인 모험은 3년 후에 <흰 바탕 위의 흰 사각형>(1918)으로 나타났으며, 최고의 목표에 도달했으므로 회화가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 말레비치는 화단을 떠났다.

그런데 몇 년 후에 그가 원초적매력을 지닌 괴이한 구상화를 그리기 위해 화단에 복귀했다는 사실은, 회화의 죽음은 선언으로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Zaum : 아무 뜻도 없이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언어


사이에서 시공간을 살다



다행이다. 이 영화 다시 볼 수 있게되어서. CGV 9월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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